눈 먼 사랑 · 도영
단편 · 전 14화

눈 먼 사랑

도영 지음

호랑이 어미를 잃은 인간 소녀,
그 곁의 작은 개, 그리고 늑대 선생.
모두가 눈 먼 사랑을 하고 있었다.

첫 화부터 읽기
1

은주는 수인이었기 때문에 죽었다. 적어도 B는 그렇게 생각했다. 촌구석 마을에서 태어난 암컷 호랑이. 은주는 죽기 직전까지 제 별칭에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녹기 그릇과 혼례품까지 싹 다 빼앗겼던 그날, 순사들이 은주의 남편을 징용하던 그날 밤.

은주에게 첫 거사가 할당됐다. 오롯이 자신의 의지였다. B는 그녀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은주가 서간도로 떠나기 전날, 보름달은 유난히 둥그랬다. B는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려 울었다. 노란 빛 아래에서 은주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그저 열살 배기 제 딸의 머리통을 쓸쓸히 내려보았을 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만강 일대에서 호랑이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최전선에서 수백개의 총알을 몸에 박고 죽었다고. B가 처마 앞에 앉아 가만히 눈을 깜박이는 동안, C가 천천히 그녀를 껴안았다. 순사들은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호랑이에 깃든 민족 정서를 처참히 짓밟았다. 호랑이 가죽이 벗겨져 초대 총독의 방에 전시되고, B는 신문을 열 때마다 제 어미의 시체를 마주했다.

그럼에도 매일 신문을 가져다주는 이가 있었다. C였다. 그는 그것을 펼쳐 보지 못할 B의 사정을 알면서도, 언제나 신문을 가져다 놓았다. 매일 아침이면 그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수인이 아니에요. 선생님한테 도움도 안 되고요."

가랑비가 내리던 새벽, 푸른 대문 앞에 어느덧 무릎 높이까지 회색의 뭉치들이 쌓였다. B는 서양식 양장을 입은 C가 마치 저승사자 같다고 생각했다. 그가 데려간 은주가 죽었으니까. B는 자정이면 모두가 지하실에서 무언가를 작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거사도, 매일 신문에 실리는 무장 항쟁도. 모를리 없었다.

평소에는 반인 반수라고 손가락질 받던 수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장 항쟁에서 가장 필요한 용병이다. 괴물이라 일컬어지던 존재들이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됐다. 은주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가장 우선순위로 열단 입단 제의를 받았다. 한반도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백두산 호랑이었다.

"오늘은 부탁을 하고자 왔어."

C의 뒤에서, 제 또래의 남자 아이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깡마른 소년은 불안한 듯 C의 소매 자락을 쥐고 눈알을 굴렸다. 한 겨울에도 여름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미의 부재와 동시에 등장한 아이. 그것이 A와의 첫만남이었다.

· · ·
2

처음부터 A와 친해진 것은 아니다. 그 개는 낯을 꽤 가리는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B는 경계심이 강한 검은 콩 달린 하얀 말티즈보다, 둥글게 빚어진 A의 인간 형상을 좋아했다. 하지만 부드러운 털과 다정한 짐승의 숨소리가 B의 품에서 꿈을 꿀 때면, 일제의 도륙이라던가 인륜을 저버리는 패악떼들의 식민 행위가 B에게도 꿈과 같이 느껴졌다.

용병이 되지 못한 수인, 전쟁에 취약한 작은 개.

A는 필사적으로 B의 결핍을 채워냈다. 백두산 호랑이의 피냄새가 가시지 않은 비릿한 검은 기와집 아래, 평화를 가장한 들꽃을 피워내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너는 괴물이 아니야. 그렇지? B는 들꽃을 꺾어 A의 귀에 꽃고 조바심을 부렸다. 그것이 A를 괴롭히는 질문인 것을 모를리 없으면서도 말이다.

"A야. 차를 준비해줄래?"

C가 검은 베레모를 벗어내며 요청한다. 그의 어깨에 걸려있던 장총은 흙먼지를 품고서 테이블 옆에 놓였다. B는 새벽의 마루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목도한다. 그리고 그가 테이블의 두번 째 서랍을 열어내고, 오르골을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동시에 문지방 너머에 있던 다락방 뒤 비밀 공간이 열린다.

작은 소음과 함께 벽이 흔들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암흑 속에서도 선명하다.

B의 눈이 탁한 빛을 띄고 그곳을 바라봤다.

"싫어요."

당사자가 아니였다. 거절은 B가 한다. 힘 없이 흔들던 다리를 접고, 무릎을 펴내며 일어선 아이는 어느새 다 자란 골격. C는 무색한 세월의 습격에 띵한 머리를 감출 수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한 것은 당연하다. C의 상처난 손가락이 울컥대며 주먹을 쥐어냈다.

매 시간 초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어떤 수인은 죽고 있다. 인기척에 잠들어있던 개가 졸린 눈으로 몸을 일으키자, 하얀 털이 부시시한 모양으로 흩어진다.

"A는 그냥 작은 개에요. 그런 애가 지하실을 왜 가요?"

"..."

"얘는 호랑이가 아녜요."

"B야. A는 네 가족이 될 수 없어. 알고 있잖니."

"그걸 왜 선생님이 결정해요."

"수인은 우리니까."

C가 피곤한 얼굴로 제 장총을 들어올린다. 오른쪽 어깨 위로 붕대가 감긴 검은 총이 매여졌다. 하얀 그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처럼 질려있는 탓에, 그저 인간이라는 죄로 B는 침묵이다.

"A도 죽일거죠."

개가 운다. A가 B의 종아리에 얼굴을 묻으며 낑낑댔다. 축 쳐져있는 귀와 희미하게 올라오는 울음소리에 B가 입술을 깨물며 제 발 아래를 내려봤다.

"필요하다면, 너 역시도 죽일 거야. 답변이 되었니?"

C의 날카로운 눈이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 아래 한층 꺾였다. 커다란 뒷모습이 B를 등지고 지하 너머로 사라진다. 한 계단씩 하강하며 C가 자취를 감추고 나면, 여명이 끝나고 동이 트는 시간이다. 구름낀 남색의 공기가 천천히 걷히고 있다. B는 C가 총을 두었던 빈 자리를 바라본다. 손잡이에 둘러져있던 피로 얼룩진 갈색의 붕대가 총 대신 남아있다. 개가 다시 울었다. B의 가라앉은 동공이 천천히 지하실 아래로 빨려들어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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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글을 가르친 것은 C다. B는 은색의 안경을 쓰고 셔츠를 걷어올린 젊은 남선생을 떠올린다. 무슨 신문사에서 하는 운동이었다. 경성의 유명한 대학에 다닌다던 그는, 밤마다 야학을 열고 동네 주민을 모아 한글을 가르쳤다. 가갸거겨. 조선. 독립. B는 제 입안을 굴러다니던 어여쁜 음절들을 퍽 좋아했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타오르던 촛불 두 개가 눈부시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그가 숨겨둔 교구들과 배움의 흔적들은 모두 장독대에 있었다. 그날의 당번은 B. 작은 아이가 디딤돌 위로 올라가 장독대 뚜껑을 열어내기 직전, 익숙한 소음이 들려왔다. 스프링이 당겨지는 음험한 소리. 알이 장전되는 소름끼치는 죽음의 냄새.

그렇게 얼어붙은 B의 머리통 뒤로 총구가 붙어왔다. 대문 너머에서는 여즉 사람들이 남아 달빛 아래 배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담 하나를 두고, 운명이 갈린다. B는 서늘한 감각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순사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던 칼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이 뭉툭한 것에 당하면 우수수 생명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집 윤씨 아저씨는 저번 달 그렇게 딸을 잃었다. B는 제 친구를 데려간 것이 수인보다 더 강력한 무기라 믿었다.

하늘 위로 뜬 달 아래 빠르게 그림자가 지나간다. B는 제 입을 틀어막고 돌아서서, 사라진 총구의 감각과 희미하게 들리는 남자의 신음 소리를 모두 주워 담았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어 고개를 돌렸을 때는, B의 믿음이 버림받은 직후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총과 욱일기가 그려진 옷. 갈갈히 찢겨져 피를 쏟고 있는 콧수염 난 순사의 가슴팍. 그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늑대의 푸른 눈까지.

C였다. 분필 대신 총보다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는 수인이 자신을 내려다본다. 처음이었다. 은주가 단 한번도 보여준 적 없던 호랑이의 혼현이 이해가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B는 왜 그들이 괴물이라 불리우는지 깨닫는다. 지나치게 강하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그들은 필시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그보다 강한 무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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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는 가르치는 것에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A는 B의 배움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인간의 혼현을 하고서 언덕에 앉아 B를 노려본다. A가 저런 눈빛을 할 때면, B는 불안해진다. 그럼에도 제가 쥐고 있는 장총에 가한 힘은 여전하다. 긴장으로 울렁이는 목울대 옆으로 총구가 흔들렸다. 강한 반동과 함께 어깨가 밀려나가면, 총알이 쏜살 같이 질주했다.

평평한 돌 위에 올려져있던 깡통 하나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귀를 멀게 만드는 굉음에 B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참았던 숨이 그제서야 내려앉는다.

"잘 할줄 알았지."

C가 천에 쌓여있던 주먹밥을 내민다. 하얀 쌀알 몇개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B는 그것을 망설임 없이 주머니에 수납한다.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A를 바라본다. 언제나 허기져있는 A가 신경쓰인 탓이다.

"A도 불러서 나눠 먹지 그러니."

"싫어요."

"나 때문에?"

C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웃는다. 호선을 그리는 낮은 입꼬리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B는 대답 없이 다시 총알을 장전한다. 그것은 다시 한번 멀리 있는 깡통을 향해 겨뉘어졌다가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C를 향해 돌아간다.

철컥. B는 안전장치를 풀고 C를 응시했다. 자신에게 향한 총구에도 늑대는 미동치 않는다. 총을 겨눈 이도, 받는 이도 모두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서 대치했다.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A만이 달리기 시작한다.

"알면서 뭘 물어요."

"..."

"나한테는 수인이 아니라, 선생님이 괴물이야."

"B야. 은주가 죽은 이유가 무어라 생각하니."

"수인이니까."

B가 잇새로 말을 짓이긴다. 씹혀 내뱉어진 음절들이 고통 속에서 몸부림쳤다.

"지킬 것이 있어서다. 네가 A를 감싸고 도는 것처럼, 은주 역시도 너를 지키려 제 몸을 던진거야."

"궤변 따위."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건 수인 같은 이유가 아니야. 그저 눈 먼 사랑이지."

"그러는 선생님은, 스스로가 괴물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거에요?"

C는 쓸쓸한 눈을 하고 그저 B를 올려다본다. 대답 없는 침묵이 의미하는 바 역시 B에게는 어려운 난제다. C라는 인물은 언제나 수수께끼처럼 불행을 몰고 왔다. B는 아직 닥치지 못한 불행을 두려워하는 자다. 눈 먼 사랑과 총구는 같은 말.

더 이상 그 누구도 불행에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 아닌, 한 나라라고 해도 말이다.

"B!"

A는 온 몸을 던진다. 총구 앞으로 맹인처럼 전진한다. C는 자신과 B 사이를 가로막고 선 다 자란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에게 막혀 C의 시야에서 B가 사라진다. 모두가 눈 먼 사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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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몽을 꾸었다. B는 땀에 젖은 제 얼굴을 손에 묻어낸다. 아직도 거세게 뛰는 가슴에 포화가 몰아쳤다. 눈과 귀를 멀게하는 환청은 오늘도 어김 없이 B를 찾아왔다. 나무로 만들어진 벽은 회색 유리창으로 투영하는 달빛을 막지 못한다. 이건 휴우증이 분명하다. B가 양 손을 교차해 제 어깨를 잡아내어 몸을 만다. B는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다. 날 때부터 생과 사의 문턱을 왕래해야 했다.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했으며, 다정의 정체를 학습하는 것에 실패했다.

그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단연코 아니다. 불행 속에서도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마련. B는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스치는 총알이 다른 이의 심장을 관통하는 것 역시 목도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느리게 응축되어 B를 악몽의 수렁텅이로 매일 밤 이끈다. 맨 앞에는 언제나 은주가 서 있었다.

"괜찮아."

A의 손가락은 길다. 그것이 B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B의 방황하는 몸이 A의 품 속으로 파고 들었다. 다정하다.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마지막 애착이었다. A의 커다란 손이 B의 어깨를 두드렸다. 따듯하고 부드럽게 쓸어내린다.

"A야. 너도 내가 괴물 같아?"

"보통 그건 수인이 하는 질문인데."

"나도 우리 엄마처럼 되면 어떡해."

"그렇게 두지 않을게."

A의 다정한 얼굴이 한 뼘 뒤로 물러난다. 그의 사랑스러운 머리칼이 베게 위로 흩어져있다. A의 눈이 B의 얼굴을 구석 구석 훑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성스러운 교감이 오간다.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서 너를 지키고 싶어. A야. 우리 엄마가 나에게 그러했듯 말야.

"..."

"오히려 내가 수인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나는 호랑이가 아니라서, 엄마처럼 강하지 않아. 너를 끝까지 지키지 못할까봐 겁이나. 네가 지하실로 내려갈까 두려워.

"글쎄, 내가 인간이었다면 더 좋았겠지."

A의 손가락이 B의 볼을 쓸어내린다. 개는 선천적으로 사랑스럽다. 달콤하고 어여쁘다. 이런 네가 나의 가족이 아닐리 없잖아. 사랑이 아닐리 없는 거잖아. 오직 개를 위해서, B는 기꺼이 괴물이 될 자신이 있었다. 쏟아지는 모든 위협을 씹어 먹고, 떨어지는 포화를 불태울 것이다. 정말 오직 내 개를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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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를 사랑한다.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B는 두꺼운 외투를 짐가방에 넣는다. 보스토크를 가는 길에 횡단 열차가 있다고 했다. 선생님이 그랬다. 그곳은 많이 춥다고, 최대한 두툼한 옷들을 챙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보름달이네."

"..."

"A야. 끝까지 얼굴 안 보여줄 거야?"

둥그런 달 아래에서, A가 B의 바짓 가랑을 물었다. 개의 작은 이빨이 B를 물고 늘어진다. B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개의 젖은 눈을 내려다 볼 뿐이다.

내가 가지 않으면, 그 다음은 네 차례일지도 모르잖아.

개를 사랑한다.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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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의 성난 목소리가 하늘을 찢는다. 눈으로 가득 뒤덮힌 하얀 사람들 틈에서, 가장 어두운 골목으로 도망쳤다. 들고 있던 첼로 가방이 자꾸 손에서 미끄러져 내려온다. 숨을 토해 낼 때마다, 입김이 올라왔다. C의 검은색 코트 위로 눈발이 달라붙어 있었다.

"눈에 뵈는게 없어?"

C의 가죽 장갑이 결국 B의 어깨를 잡아챈다. B의 어깨가 돌아가며, 가방이 떨어졌다. 열린 자크 틈으로 총구가 삐져나왔다. 아직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붉은 벽돌 아래 그림자는 C와 B를 가려주며, 이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있다.

헉헉대는 서로의 숨소리를 가르고 도베르만 한 마리가 C의 곁으로 달려온다. B는 제 덩치만큼이나 위협적인 그 사냥견을 한참 바라봤다. 또 수인구나. 붉은 목줄이 둘러져 있었다. C의 것이다.

"차가 세 대 이상이면 도망치라 몇 번을 당부했어!"

"딱 세 대였어요."

"오늘만 기회인 것은 아니야. 잡히는 순간 끝인 걸 왜 몰라."

"...맞췄잖아요. 무릎을 뚫었는데."

B는 다시 가방을 여민다. 튀어나왔던 총구를 쑤셔 넣으며 묵묵히 대답했다. 귀를 흔들던 굉음과 비명 소리가 여즉 B의 발목을 붙든다. 가슴이 거세게 뛰어대고 있었다. C의 말이 모두 틀리지 않은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저, 쏠 수 있어서 쐈을 뿐이다. 오늘이 아니라면 그 다음 기회까지 또 기다려야하는 것이 싫었다. A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잔뜩 화가 나 있을 것이다. 서둘러 돌아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무릎을 뚫은 거론 소용 없어. 죽여야지. 우리는 놈의 숨통을 끊고 간다."

"내가 할게요."

"너처럼 독단적인 놈한테 어떻게 맡겨."

"그럼 누가 하는데요. 나 말고, 누가 있는데요."

B가 C를 노려봤다. 검은 개가 내뱉는 하얀 숨결이 허공을 떠돈다. 날카로운 귀와 뾰족한 이빨. 잔뜩 서 있는 근육들까지. C가 개의 등을 쓸어내렸다.

"총 보다 더 확실한 방법으로 하면 돼."

"그딴게 있어요?"

B는 기가 찬 웃음을 내뱉는다. 달아오른 뺨을 하고 짜증난 표정을 짓는다. C는 묵묵히 대답 없이 B를 응시하고 있다. 골목 밖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나랏말들이 흘러 들어온다. 그럼에도 여전한 둘 사이 적막 속에서, B는 무언가를 깨닫는다. 서늘한 긴장감은 익숙한 것이다. 그리고 총 보다 더 확실한 것은 분명히 있다.

"선생님이 직접 하는 건 더 위험해요."

수인. 눈 깜짝할 사이에 적의 심장을 뚫어내는 포식자의 발톱과 위협. 늑대가 나선다면, 그것은 반드시 죽는다. 호랑이의 말로를 모두 지켜보지 않았는가. 수인은 체포와 동시에 반드시 사살당했다. 혹은 체포 당하기 전에 이미 쉬운 표적이 되어 총알 받이로 숨통이 끊겼다. C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B는 입술을 깨물고 제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바닥에 쌓인 눈 위로 개의 발자국이 남았다. 당장이라도 악을 쓰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몸을 돌렸다. 골목을 나설 것이다. 자폭을 이야기하는 늑대 수인에게서 도망칠 것이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어. 다음 총독이 부임하면, 새로운 형태의 통치가 열릴 거다."

B가 발걸음을 멈추고 한숨과 애환을 작게 토했다. 그래서요.

"선생님이야 말로 조선에 눈이 멀었어요. 그 사랑이 제일 괴물 같은 거 알아요?"

무언가를 억누르는 말투로 매정하게도 걸었다. 그를 동정하게 되고, 조선을 사랑하게 될까봐.B는 끝까지 뒤돌지 않았다. 뒷모습이 점차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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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B가 코트 자락에 몸을 파묻는다. 보스토크 역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다. 여기 저기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정신 없는 소음들과 기차가 내뿜는 증기 소리는 B의 모든 것을 은밀히 만드는데 일조했다. 1등칸 앞에는 호화로운 짐가방을 들고 있는 여행객들이 줄을 섰다. 푸른 눈을 가진 이들 사이에서, 검은 눈을 지닌 자들이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하다.

백발의 머리와 깊게 자리잡은 이마 주름, 서양식 양복을 갖춰 입은 볼품 없는 작은 덩치. 카이토, 내정되어 있는 가장 유력한 총독 후보였다. 무릎을 절고 있다. 어제 B의 총알이 그것을 뚫어낸 탓이다. 예상치 못한 암살 시도로, 카이토는 일정을 앞당겨 조선으로 빠르게 귀국한다. 삼엄해진 경비 역시 당연히 뒤따라왔다.

카이토의 뒤로는 칼을 차고 있는 순사만 여섯. 그러나 근처에는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곱절로 더 있을 것이다. B의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 불안한 마음에 자꾸 입구를 돌아봐야했다. 당장이라도 회색 털을 지닌 늑대가 포효하며 달려올 것만 같다. 낡은 시계탑 옆에 섰다.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는 신문 위로, 첼로 가방을 내려둔다. 순경의 뒷모습이 잘 보이는 위치였다. 그녀가 노리는 것은 카이토가 기차를 타는 순간이다. 창문은 얇았다. 총알이 그것을 뚫고 카이토의 이마 정중앙을 관통하는 상상을 해본다.

독단적인 행동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늑대가 조금만 늦게 도착해준다면 가능하다. 수인이 나서기 전에 빠르게 끝내야했다. C를 살리기 위한 시나리오였다. 자신은 체포 되어도, 살 궁리를 강구할 확률이 있었다. 수인과는 다른 위치다. 협상을 위한 카드가 될 수도 있었고 눈에 띄지 않게 도망을 칠 방법 역시 많았다. 낙관적이라 해도 좋았다.

B는 더 이상 수인이 죽임 당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초조하게 입술을 적셔내는 B의 뒤로, 기차가 들어선다. 요란스러운 소음이 귀를 따갑게 때렸다. 카이토의 발걸음이 움직인다. 승강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B의 시야도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긴장으로 축축해진 손은 가방끈을 꽉 잡아낸다. 자크를 열기 위해 움직이는 손이 느리고 신중하다. 아직까지 늑대는 등장하지 않았다. 카이토는 승강장 계단을 밟고 기차에 올라탄다. 절룩대느라 느린 속도였다. 기차 시간에 맞추어 주변의 인파가 점차 많아진다. 첼로 가방의 자크가 내려가면, 긴 총구가 보였다.

B의 손이 움직인다. 그리고 그때. 승강장의 끝에서 개가 짖기 시작한다. 거칠고 단단한 울음 소리다. 왜일까. A가 떠올랐다. B는 자신도 모르게 자크를 내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꺾는다.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검은 도베르만. 붉은 목줄. C가 데려온 개였다. 횡단 열차서부터 합류한 처음 보던 개.

이름도 없고, 나이도 모른다는 덩치가 큰 용맹한 근육질의 짐승. 그것이 더욱 거세게 짖으며 B를 향해 달린다.

"...뭐야."

늑대가 아니었어.

개의 붉은 목줄에 검은색 꾸러미가 달려 있다. 모를리 없는 무기다. 점착 폭탄. 반경 삼백미터를 날려버릴 폭팔력을 가진 러시아식 신식 무기로, C가 들여오기 위해 공들인 것이다.

말도 안돼. B가 입을 틀어막는다. 개는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기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인파 속에서 한번도 길을 잃지 않고 정확히 카이토의 칸을 향해 질주한다. B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홀린듯 가방을 내려두고 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세 걸음도 가지 못했다.

개가 다가오는 B를 향해 짖었기 때문이다. 이를 드러내며 B를 경계하고 있다. 으르렁대는 이빨과 날카로운 눈매가 매섭게 노려본다. 걸음을 더 떼보려던 B에게, 어김 없이 무지막지한 울음소리가 쏟아졌다. B가 놀라 그대로 발걸음을 멈춘다. 개가 이쪽을 향해 계속해서 짖고 있다. 다가오지 말라는 듯 위협한다.

...마치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필사의 움직임. B는 그 살벌한 위협에 무언의 기시감을 느껴내고 만다.

"A?"

미친 소리인 것을 안다. A는 하얗고 작은 말티즈다. 눈 앞의 개는 열배도 넘는 덩치를 지닌 도베르만. 같은 개 수인이여도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그래도.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을 잘 알아도.

너야?

어제처럼 B의 어깨가 돌아간다. 거센 손길과 가죽 장갑. 분명한 C의 것이었다. B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또 다른 수인을 본다. C의 눈이 푸르게 빛나고 있다. 긴장으로 울렁대고 있는 얼굴이다.

"선생님. 저 개, 뭐에요. A가 어딨어요?"

"위험해. 뒤로 와."

"A 맞죠. 아니, 아니라고 해주세요. 아니죠."

"B!"

C가 다시 고함을 친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린 첼로 가방은, 볼품 없이 일그러져있었다. 그가 강한 악력을 주어 B를 끌어낸다. 손목을 잡힌 B가 힘 없이 뒷걸음질 쳤다. 여전히 개에게 시선을 박은 채다. 도베르만은 잠시 멈춰서서 C의 손에 끌려 나가는 B를 보고 있다.

그의 둥그런 눈망울이 B를 영원처럼 담는다. B가 멀어진다. 그렇게 어느정도 벌어지는 거리에 개는 다시 미련 없이 앞을 보고 달렸다. 용맹한 네 발이 기차를 향해 올라타면, 개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제서야 B의 정신이 돌아온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공포스럽다. 발버둥치는 B의 사지는 C에게 결박된지 오래. 흐느끼는 B를 두고 C는 그저 계속 뒤로 후퇴한다. 승강장과의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다.

"선생님. 제가 미친 걸까요."

강한 몸싸움에 B는 탈진 직전이다. 벅차오르는 숨을 내려앉히며 B가 운다. C의 손에 이끌려 나가다보니, 기차가 아득히 보이지 않는다. 덜컥 두렵다. 정말 그 개가 A일까봐, B는 미치기 직전이다. 이를 악문 B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C를 뒤로 밀쳤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다. 다섯 걸음을 뗐다. 그리고, 굉음이다. 엄청난 반동에 B의 몸이 뒤로 굴렀다. 폭팔음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튄다. 무언가 부숴지고 있는 조각들이 발 옆으로 굴러들어왔다. 그것들은 B의 볼에 생채기를 내며, 손가락 사이를 베어낸다. 옅은 핏줄기가 바닥으로 뚝뚝 떨어진다.

이명은 아주 얇고도 선명하게 B의 귀를 괴롭힌다. 순식간에 주변은 엉망이 됐다. 사방을 찌르는 비명 소리와 뜨거운 열기, 쓰러져있는 인파들. 모든 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공기가 멈춘 것만 같다. B가 다시 헛발질을 하며 몸을 일으키지만 소용 없다. 상체가 무너져내린다.

기어코 반복되는 시도 끝에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뿌연 시야 너머로, 내려 앉은 공기의 먼지들과 검은 연기들은 다 거짓말처럼 현실 감각이 없다.

"제발 내 말 들어. A는....."

죽지 않을 거야.

거짓말. 상체를 부축해오는 손은 A의 것이 아니다. B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운다. 계속해서 운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 개가 A일 것이란 무서운 예감은, B의 모든 것을 조각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B가 고개를 든다. C의 눈을 바라본다. 그의 눈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 두 눈이 허공에서 마주하자마자, B는 괴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녀의 개가 저 너머에 있다고, 늑대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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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과거 1

젊은 C는 우산을 쓰고 하얀 개를 바라본다. 손바닥만한 크기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유약한 짐승. 전쟁 통에서는 도처에 깔린 광경이니 놀랄 것도 없었다. 이대로 두면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고민하던 C의 손에서 우산이 잘게 털린다.

빗물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불가항력적으로 잠시 C의 시야는 우산으로 가려진다. 그리고 그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더 이상 하얀 개가 없었다. C의 낮은 웃음소리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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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과거 2

A는 그렇게 발견됐다.

때로는 희었다가 또 어느때는 검은 채로.

사랑 받을 돌연변이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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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언덕이 꽤 높다. B는 장총을 질질 끌고 그 위를 오른다. A가 좋아 하던 장소였다. B가 사격 연습을 할 때면, 이 곳에 앉아 종종 구경하곤 했다. 그때 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내가 C에게 겨누던 총구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오던 넌, 어떤 마음이었을까.

처음부터 C가 널 왜 데려왔는지 생각했어야했다. 그저 작은 개였다면, 애초부터 널 지하실로 부르지도 않았겠지. 두 개의 혼현을 가진 개는 특별하니까.사냥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네가 얼마나 큰 자원이었겠니.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횡단 열차를 따라 탄 너를 안아주지도 못했다. 나 대신 폭탄을 들고 기차로 뛰어드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널 위해 죽을 수도 있다 호언장담 하던 오만함의 결과는 지나친 비극이다.

"A야."

B는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그리고 느리게 A를 호명한다. 저 멀리서부터 당장이라도 그 아이가 뛰어 올 것만 같다. 작은 발소리를 내며 사랑스레 품에 안겨온다면, 그것이 꿈이라 해도 평생을 그 안에서 살고 싶을 터인데.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던 너에게, 나는 수인이 되고 싶다 지껄였다. 그리고 그것은 너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네가 나를 지키고 싶게 만들었다.

미안해. 아무 것도 몰라서 미안해. B는 말라붙은 눈으로 길게 누운 총을 매만진다. 시대를 사랑하고, 조선을 사랑한 C를 탓할 수 없다. 잘 알고 있다. 눈 먼 사랑에 괴물이 되는 것은 죄가 아니다.

B는 느리게 눈을 감는다. 그래도 C가 틀렸다. 은주가 죽고, A가 죽은 것은 그들이 수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핑계가 되기에는 내 사랑이 너무나 불쌍하다. 이제 B의 결핍은 갈 곳을 잃었다. 사랑을 쏟아야만 하는 대상이 세상에서 삭제됐다.

B는 총을 장전한다. 덜컥이는 소음이 끔찍하다. 불공평했다.

세상은 왜 수인의 다정함을 편들어주지 않을까. 대체 왜 인간의 유약함은 수인들을 책임감에 몰아 넣는가.

장총의 총구가 B를 향한다. 수천 번도 더 매만진 익숙한 무기가 결국 자신을 겨눴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없는 세상, 잔인함에 매몰 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이곳에는 다정함이 부재한다.

B가 눈을 감았다. A를 떠올린다. 하얀 개를 생각한다. 부드러운 다정함을 끊임 없이 재생시킨다.

A야.

총구가 당겨지기 직전, B가 A를 부른다.

끝까지 그 이름을 호명했다. 달콤한 환청. 어디선가 개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빠른 발소리가 언덕을 타고 올라온다. B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멍! 개가 짖었다. 환청이 아니였다. B가 번뜩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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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과거 3

C는 다친 검은 개를 들어올린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비에 잔뜩 젖은 어린 개가 낑낑댄다. 우산을 고쳐 안으며 머리를 쓰다듬자, 개가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가 맑다. C는 제 손에 묻어나는 피를 보고 혀를 찬다. 모습을 둔갑할 줄 아는 어리고 특별한 개가, 구조되기 전까지 살아 남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은주의 집으로 향한다. 죽은 호랑이의 집으로 간다. C의 품에서 개가 바스락댔다. 가는 길 내내 품을 내어주어 그를 달궜다. 그러나 점차 개의 몸은 굳어간다. 결국 조금씩 빨라지던 발걸음이 달리기로 바뀌었다. 우산은 골목을 구른다. 비를 맞은 늑대가 조급히 개의 등을 문질렀다.

푸른 대문 앞, 개를 내려 놓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숨을 멈췄다. 핏물이 범벅된 손으로 허망히 그 시체를 바라봤다. 다리를 굽히고 앉아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수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묵념의 끝에서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그곳에, 더 이상 죽은 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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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과거 4

깡마른 소년이 겁 먹은 눈을 하고 C를 보고 있었다.

숨이 멎은 개 대신, 살아있는 수인이다.

상처 하나 없는 멀끔한 얼굴. 묵념을 끝낸 C가 묻는다. 왜인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드는 강렬한 무언의 예감에 입꼬리가 사선을 그렸다. C의 기다리던 임이, 애달프게 그리워하던 봄이 어쩌면..

"방금 죽은 희었다가, 검기도 한 개. 그거 너니?"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다 곧이어 바로 도리질친다. 그리곤 둥그런 눈동자를 올려 C를 곧바로 응시했다. C는 이런 눈빛을 본 역사가 없다. 그래서 바라왔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아이의 입이 달싹이며 움직인다. 개는 맞는데, 그런데요.

나는 안 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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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이건 C의 눈 먼 사랑을 끝낼 구원자의 이야기다. 조선은 독립할 것이다. 네 개 덕분에.

— 끝 —